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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3)

새벽5시에 2020. 6. 15. 13:03

프로이트는 인간의 심리를 3가지로 나누었다. 

 

슈퍼 에고

에고

리비도

 

중간에 있는 에고와는 다르게 슈퍼 에고는 사회적 규범과 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리비도는 지극히 동물적인 욕망과 욕구를 담당한다. 

 

만약 에고가, 리비도를 죄악시하고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억누르고, 그것에 죄책감을 가지면 에고는 약해진다. 약해진 에고는 정치적 권력과 권위에 복종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따라 반인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이다. 따라서 폐쇄된 성교육을 통해 인간 본성인 리비도를 억누르거나 죄악시해서는 안되며, (그 결과는 조주 빈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성교육을 개방시키고, 인간 본성을 억누르기보다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개인은 강한 에고를 가지게 되고, 권위나 권력에 복종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건강한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다. 

음...나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토대다!!


독일에서 사회가 180도 바뀌게 된 건 1969년부터라고 한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당시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데모크라티 바겐"이라는 구호로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이 말의 뜻은 '민주주의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보자'라는 뜻이다. 소위 유럽에서는 68 혁명이라는 혁명을 통해 기존과 다른 천지개벽이 일어났는데, 이 68 혁명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었다. 우리로 예를 들면, 유교적 윤리의 억압, 부모의 억압, 여성에게 사회가 부여한 억압, 자본주의의 억압, 직업의 억압 등등 1968년 유럽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기존 정치체제를 정면으로 의심했고 사회의 밑바닥부터 가장 꼭대기까지 혁명에 동참한다. 이 시발점은 바로 베트남 전쟁이었다. 과거 베트남이 미 해군 군함을 침몰시켜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는 개소리로 전쟁이 시작되고 수년간 무고한 베트남인들과 미군들, 그리고 참전국인 한국군들의 희생이 무색하리만큼 베트남 전쟁은 거짓전쟁이었다. 베트남 군의 미해군 군함 공격은 없었고 오직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개시하고 세계를 농락했다. 바로 이것으로 인해 유럽에서는 모든 것에 대한, 모든 억압에 대한 해방을 외친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하에 민주주의는 짓밟히고, 68 혁명의 물결이 도달하지 못한 체 베트남전에 미국을 제외한 사실상 유일한 전투병을 파병한 국가가 되었다. 빨갱이로 몰린 자들은 남산이나 남영동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경제발전이라는 억압하에 모든 반정부 행위는 빨갱이 짓으로 낙인찍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끊임없는 경쟁사회 '헬조선'에서 살게 된다. 

 

현재 한국은 노예 사회이다. 과거 노예 감독관이 채찍을 휘둘러 노예들을 양성했다면, 현재는 나 자신 안에 감독관을 심어놓고 스스로를 착취한다. 자기 계발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발전과 개발을 하도록 만드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내가 잘못해서 안된다', '내가 게을러서 못했다', '노력이 부족하다' 등등의 이유로 잠시도 쉴 수 없도록 한다. 진정 모든 이의 마음속에 노예 감독관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신이 안되고, 내가 실패했던 이유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 사회적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낙오자는 양성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성공했다고 한들, 다음 판의 승자도 과연 당신일까? 나도 몇판을 이겨봤지만, 결국 패자속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어있다. 결국 OECD 국가 노인과 청년의 자살률 1위라는 자살 사회가 된 것이다.

 

본문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설마 내 안에 노예 감독관을 심어놓았으랴"하고 의심되는 분들은 한번 실험해보세요. 아주 간단합니다. 어느 햇살 좋은 날,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멋진 음악도 들으면서 기본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감을 느끼려고 시도해 보세요. 바로 그 순간, 내 안에서 이렇게 속살일 겁니다. '너 지금 뭐하니? 너 지금 이럴 때야? 네가 이러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뭐라도 열심히 할 텐데, 이러고 있어도 되겠어? 그러면 서서히 내가 너무 안이한 것은 아닌가, 너무 뒤처지고 있지는 않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노예 감독관입니다. 

 

나 역시 뜨끔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사상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생각을 품고 살고 있다고 나름 자부했는데, 내 안에 노예 감독관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때때로 유연하지 못한 생각을 할 때, 왜 이러지?라고 느낀 적은 종종 있었다. 

 

결국 나 역시 대한민국에서 초중고 12년간, 군대 2년 2개월간, 대학 및 사회생활을 하면서 뼛속까지 한국형 자기 착취 노예였던 것이다. 나는 중국에서 약 8년간 유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자기 착취형 인간이었다. 

 

저자인 김누리 교수 역시 자신에 대해서 말한다. 

"저는 독일에서 8연을 살면서 비로고 제가 괴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공간적으로 거리를 가지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갖고서야 자신을 새롭게 인식한 거지요. 그러나 한국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자신이 괴물로 길러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일상화된 공간 안에서 살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신의 영역에 속합니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니 남성 가해자들을 마냥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것이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 않는 거지요. 

(4)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