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융합. 서로 전혀 관계없는 것을 이어보는 것.
둘째는 숙고. 명상도 일종의 숙고다.
세번째는 감성. 두줄실험으로 창의력은 느낌과 감정이 풍부할 때 더 활성화 된다는 사실. 느낌과 감정이 풍부하려면 결국 경험아닌가? 해보고, 부딛혀보고, 즐거워보고, 화나보고 그래야 결국 그 안에서 뭔가 떠올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넷째는 연결. 처음 얘기한 융합은 어떤 것과 어떤 것을 이어보는 것이고, 여기는 사람간의 연결을 말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다른 분야의 전문가 등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기존 나만이 생각이 아닌 새로운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다섯번째 직관. 딱보면 척 아는 직관.
그 외에 낮선 곳이나 것들을 바라보기. 아무생각없이 휴식하기. 유쾌한 생각하기. 등이 있다.
창의력을 가진다는 건 생각보다 그리 멀리있는 것들이 아니다. 다만 리드미컬하게 생각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뭔가를 낮설게 보다가 만져 보고 맡아 보고 다른 것과 이어보고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과 토론해보고 그냥 버려두고 생각하지 말하보고 말이다. 한가지 사물, 한가지 현상에 대해서 그냥 여러방향 여러각도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창의다.
<생각의 탄생> 과 <인지니어스> 라는 책을 설명한다. 글쓰기 방법을 설명한 책인데, 두책 모두 관찰에 대해서 말한다. 컬러베스효과라는 것이 있다. 평소에는 어떤 것에 대해서 별로 보이지도 관심도 없었는데, 어느순간 온세상에 그것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나의 차가 그랬다. 성인이 되어서도 차에 별 관심이 없었고 면허도 늦게 따고 차도 늦게 샀다. 첫차를 중고로 샀는데, 사기 전까지 그 차가 그렇게 많을 거라고 생각 못했다. 도로에 나가보니 나갈 때마다 눈에 띄더라.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을 하면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3관. 관심, 관찰, 관계. 세상에는 수 만가지 세상이 동시에 존재한다. 강원국은 50대가 되어서야 겨우 다섯가지 세계를 경험했다고 한다. 증권, 홍보, 청와대, 출판, 글쓰기. 나는 30대 중반이고, 지금까지 나의 세계는 중국, 전자, 사업 정도가 될 것 같다. 요즘 나의 관심은 운동이다. 37년간 바뀌지 않은 몸을 바꾸어보려고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유도, 태권도, 복싱을 하고 군대에서도 남못지 않게 특수훈련도 받았지만 몸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체중은 빠졌다가 쪘다가 했지만 체질은 결코 변하지 않더라. 근데 지금에 와서 진짜 한번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한달 전부터 그러고보니 2020년 6월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크로스핏, 처음에는 쇳덩이보다 체중을 이용해서, 그리고 뭔가 원초적인 장비로 운동을 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다. 왠걸 진짜 정말 힘들다.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숨찬 상태로 땀이 비오듯이 오는 걸 매번 겪는다. 알고보니 전세계에서 매년 크로스핏 대회를 연다고 해서 유튜브에 찾아봤더니 정말 엄청난 괴물들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면서 운동의 세계에 빠지고 있다. 한달쯤 되니 먹는 것도 가려 먹기 시작했고, 물도 의식적으로 많이 마시고 있다. 운동에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인스타그램에 그렇게 몸매좋고 힘좋은 사람들이 많은 걸 여태 모르고 살았다. 전에 운동해야지 하고 헬스장 1년 끊으면 길어야 3달, 그것도 드문드문 가는게 전부였다. 그거 해보고 난 몸이 안만들어지나? 하고 포기했다. 지금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1~3년까지가 초급자란다. 모르면 이렇게도 과감할 수 있다.
관찰의 단계. 첫째는 보이는 그대로 쓰는 것. 둘째는 내 느낌을 적는 것. 셋째는 분석하기. 넷째는 주관적으로 비판하기. 다섯째는 나를 보기. 마지막은 없던 세계를 창조하기다. 시인 장석주의 <대추한알> 이라는 시를 말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개, 저 안에 천둥 몇개, 저 안에 벼락 몇개” 보통 대추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 나면 그것이 마치 영화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대추 한 알이 겪었을 그것들이.
평소 글을 쓰기위한 네가지 도구. 글은 몰아서 쓰기보다 평소에 쓰는 것이 좋다. 강원국은 평소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서 칼럼을 읽거나, 동영상 강의를 듣거나, 서점에 가서 책의 목차를 본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막연한 생각도, 뭘 써야할지 모르다가도 결국 써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4가지 글쓰기 도구의 첫째는 독서. 둘째는 토론. 셋째는 학습. 넷째는 메모다. 나는 개인적으로 독서, 토론, 학습은 잘 해오고 있다고 나름 생각하는데, 메모는 해놨다가도 막상 글쓰기에 써먹기는 정말 어렵다. 왜냐면 그때 메모 해놓은 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생각으로 변하거나, 때로는 불과 몇시간 전의 생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래된 생각같이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문제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전체 내용을 다 알고 글을 쓰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충격적이다. 다른 사람들의 책을 볼 때, 와 이 사람은 진짜 어떻게 이런걸 다 알고 썼을까? 항상 하던 생각이다. 근데 아니라니. 쓰면서 안다는 거다. 모든 사람들이. 물론 머릿속에 방향성은 있었겠지만 전체를 전부 알고 쓴 건 아니라는 것.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글쓰기가 정말 훨씬 수월해질 것 같다. 항상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서 분석 후에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나였기에 이제는 쓰면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기 전에 세가지를 물어야 한다. 무엇에 관해 쓰지? 왜 쓰지? 어떻게 쓰지? 일반적으로 무엇에 관해 쓸 지와 어떻게 쓸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만 왜 쓰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왜 쓰는가? 글쓰기 연습을 위해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블로그에 올린다. 이 글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글은 내가 글쓰기에 대해서 배우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 정보를 취득하고, 쓰면서 느끼는 점을 기록할 수 있는 것, 점점 글쓰기에 대해서 많이 알아갈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잘 쓰는 방법은? 나에게 아직 기교는 없다. 진실성, 솔직함이 지금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다. 글은 독자와 자신 중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사실 지금은 나 자신을 위해서 쓴다. 물론 독자가 보고 뭔가 영감을 얻었으면 좋겠지만, 지금 내 실력으로 독자에게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글쓰기는 결국 독자를 위해 쓰여져야 한다. 나 역시 그런 글을 쓰고 싶기에 글쓰기를 배우고 있다.
사실 나는 힘들 때마다 글을 써왔다. 누구 보라고 쓴 건 아니고, 당시에는 그저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곳 조차 없었기 때문에 뭐라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11시에 집 근처 24시 카페에 들어가는 이의 마음을 아는가? 내가 그랬다. 정신없이 두 시간을 써내려가면서 마음에 쌓인 울화를 치유했다. 그런데 그 순간만 치유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수차례, 수십차례 글을 쓰면서 내가 잘못한 일들, 고쳐야 할 것들, 앞으로의 계획, 내가 꿈꾸는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결국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써내려간 그대로 인생을 이끌게 된다. 주변 사람들, 가족과 친구, 친적 모두 말렸던 퇴사를 과감하게 결정했고, 사업을 시작했고, 또 사업을 시작했고, 배울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고, 결혼도 했다. 글을 쓴다는 건, 그것이 아무리 막연한 개인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자신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정말 삶이 변하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글이 잘 써지는 때가 있다고 한다. ‘진짜’ 감정을 느꼈을 때라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거나, 이별할 때, 화가날 때, 이런 진짜 감정들이 내 안에 휘몰아칠 때가 글이 가장 잘 써질 때라고 한다. 정녕 그러하다. 나는 평소 기분이 잔잔하게 좋을 때, 즉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때는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억지로 쓰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집중도 잘 되지 않고 이상한 쓰레기 같은 글만 써내려 갔다. 근데 감정기복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글을 쓰게 된다. 물론 글의 퀄리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앞뒤 문맥은 맞는 글을 쓰게는 된다. 진짜 감정이 '진짜 글'을 쓰게 만든다. 맞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이유로 논리력, 구성능력, 어휘력, 비판능력, 판단력 등을 든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사람의 이성과 감정 중에 무엇이 더 좋을 글을 쓰게 만들까? 강원국은 감정적일 때 더 완성도 높은 글이 나온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나는 주로 힘들 때 글이 저절로, 아니 무조건 써야만 했다. 정신과 전문의도 그렇게 말한단다. ‘불안, 초조, 권태, 긴장, 슬픔 등 부정적인 감정이 창조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라고. 이 말에 진정 동감한다. 싸이가 ‘언제부터 딴따라에게 불행이 걱정거리 였냐’며 말한 것과 같이 글쓰는 사람에게는 행복과 불행 모두 축복이 된다라고. 대문호 톨스토이인지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생활이 풍요로우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해서 돈을 벌어 도박장에서 탕진하는 그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
프랑스 문화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말한 스튜디움과 푼크툼에 대해 설명한다. 스튜디움은 사진을 보며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생각, 느낌을 말하고, 푼크툼은 작가 개인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푼크툼이 없는 예술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것이라고… 글의 본질은 푼크툼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한 장의 그림을 보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듯, 영화 한편을 보면서 각각 다른 것을 느끼듯, 같은 글을 읽더라도 각자가 다른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인정욕구로 처음에는 독자가 원하는 글을 쓴다. 매력없다. 독자는 글을 읽을 때 글을 상대하는 사람이 아니란다. 글을 읽는 독자는 글을 쓰는 작가의 상태가 되기 때문에 매력있는 글은 거칠고 삐딱하고 불편한 글이라야 독자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한다. 평소 생활에서도 힘들게 좋은게 좋다며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가는데 글을 읽으면서까지 그러고 싶겠냐는 말이다. 그렇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다가도 작가 역시 거기에서 한단계 성장하며 그런 거친 글이 아니더라도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글을 쓰게 된다고…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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